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보드게임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모노폴리(Monopoly)], 두 번째는 [스크래블(Scrabble)]이며, 그 뒤를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이 팔린 게임은 [루미큐브]다. [루미큐브]는 국내에서 2000년대 보드게임카페 붐을 타고 [할리갈리(Halli Galli)], [젠가(Jenga)]와 함께 보드게임 삼신기(三神器)로 알려졌다.
게임 방식
루미큐브는 숫자 1부터 13까지 4가지 색(빨강, 주황, 파랑, 검정)의 타일 2세트와 조커타일 2개로 이루어져 있다. 총 106개의 타일을 섞어 7개씩 쌓고, 각자 14개의 타일을 가져가 자신의 받침대에 정렬해 놓는다. 이 타일들을 규칙에 맞게 먼저 모두 내려놓는 사람이 게임에서 승리한다.
타일을 내려놓으려면 같은 숫자의 다른 색깔 타일(Group)이나, 같은 색깔의 다른 연속된 숫자(Run)로 3개의 이상의 타일을 조합해야 한다. 처음에 타일을 내려놓을 때는 내려놓는 타일의 숫자 합이 30 이상이어야 하는데, 이것을 ’등록’이라 한다. 두 개 이상의 조합을 내려놓아 그 합계를 30 이상으로 맞춰도 된다. 등록 이후에는 조건이 맞는다면 타일을 낱개로 내려놓을 수 있으며, 기존 조합을 재조합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3이 4개 붙어있는 타일에서 빨간색 3을 떼어낸 후, 내가 가진 빨간색 1, 2 타일을 붙이는 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제한시간 1분 동안 여러 개의 조합을 분해, 재조립할 수 있다. 하지만 조합이 만들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벌칙으로 타일 3개를 가져가게 되니 신중해야 한다.
조커(Joker)를 사용하면 조합을 더 원활하게 만들 수 있다. 조커는 색상과 무관하게 사용할 수 있으나, 게임이 끝날 때까지 들고 있다가 지면 큰 마이너스 점수를 받는다. 만약 조합을 만들 수 없다면, 쌓여있는 타일 더미에서 타일을 1개 가져오면 된다.
자신의 타일을 전부 내려놓으면 그 즉시 ‘루미큐브’라고 외친다. 누군가 타일을 모두 내려놓으면, 그 즉시 게임이 끝난다.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자신이 가진 타일의 숫자 합을 마이너스 점수로 받고, 승자는 모든 사람들의 마이너스 점수를 플러스 점수로 가져온다.
루미큐브의 탄생
루미큐브는 오케이(Okay), 바티칸(Vatican)과 같은 ‘러미(Rummy, 특정한 조합의 카드를 모으는 놀이) 형식’의 카드게임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러미 형식의 게임들은 보통 같은 종류의 카드나 연속적인 카드 조합을 만드는 것을 기본 규칙으로 한다. 이 외에도 게임 순서가 일정하게 돌아가며, 카드나 타일 더미를 섞어 각 플레이어들에게 나눠주며, 카드 뽑기 더미와 카드 버리는 더미가 있으며, 플레이어가 자신의 차례에 카드를 뽑는 등의 공통점을 확인할 수 있다.
터키의 전통 놀이 ‘오케이’. 타일을 모아 개인 게임판에서 모든 세트를 만들어 내는 부분이 마작과 비슷하다. 루미큐브의 개발시기에 이미 플레이되었다는 구전이 있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Boardgamegeek.com>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루미큐브의 개발은 이스라엘이 아닌 루마니아에서 시작됐다. 루미큐브의 개발자는 루마니아 태생의 유대인인 ‘에브라임 헤르짜노(Ephraim Hertzano)’다. 1940년대 당시 공산국가였던 루마니아에서는 카드 놀이가 퇴폐적으로 간주되어 금지됐었기 때문에, 러미 게임을 즐기기가 어려웠다. 헤르짜노는 원래 플라스틱으로 칫솔이나 화장품 액세서리를 만드는 일을 했는데, 그는 러미 게임을 즐기기 위해 카드가 아닌 다른 대체재를 모색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플라스틱 타일과 이를 올려두는 나무 판을 생각했다.
플라스틱은 당시 루마니아에 상당히 드물고 비싼 재료였기 때문에, 이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헤르짜노는 출장을 다녀오며 비행기 조종실(Cockpit)의 플라스틱 덮개를 칫솔의 재료로 재활용하는 가게를 발견했고, 이 방법으로 게임을 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드디어 합법적인 러미 게임을 개발한 그는 친구들을 불러 즐거운 저녁을 보냈고, 친구들로부터 여러 의견을 받아 루미큐브로 알려진 새로운 러미 게임을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헤르짜노와 가족들은 루마니아를 떠나 이스라엘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렸고 소규모 작업장을 열었다. 헤르짜노는 그곳에서 루미큐브를 수제작했고, 6개씩 제작될 때마다 그것을 들고 인근 가게들을 방문해 게임을 판매했다. 이 방문에서 헤르짜노는 가게주인을 만나 절대 판매대금을 먼저 요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단 먼저 해보세요. 만약 당신이 이 게임에 푹 빠졌다면, 그때 지불하셔도 됩니다. 만약 이 게임에 푹 빠지지 않았다면, 그냥 게임을 돌려주시면 됩니다.”
헤르짜노의 자신감이 엿보이는 일화다. 그렇게 6개의 시제품은 60개가 되고, 600개가 됐으며, 곧 진짜 사업이 됐다. 뒤뜰에서 만들어지던 루미큐브는 이스라엘 최고의 수출품으로 등극하고, 1977년 미국에서 한해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이 되었다.
루미큐브는 1978년 마리아나 헤르짜노(Mariana Hertzano), 미챠 헤르짜노(Micha Hertzano)가 설립한 레마다 라이트 인더스트리(Lamad Light Industries)를 통해 전세계에 배급됐다. 레마다 라이트 인더스트리는 사해에서 25km 떨어진 사막도시인 아라드에 위치하고 있으며, 120명의 직원들이 3교대로 일하며 한해 400만 개의 게임을 생산하고 있다.
루미큐브는 현재까지 5000만 개 이상 팔렸고, 56개국에서 26개의 다른 언어로 출판됐다.
루미큐브의 종류
루미큐브 시리즈들은 게임 방식의 차이보다는 구성물의 차이에 따라 구별된다. 국내에서는 [루미큐브 클래식]을 기본으로 [루미큐브 인피니티], [루미큐브 셀렉트], [루미큐브 클럽], [루미큐브 트래블], [루미큐브 XP] 등이 판매되고 있다.
[루미큐브 인피니티]는 루미큐브 기본판과 동일한 타일을 가지고 있다. 다만 개인 게임판이 다르다. 내 패를 상대방에게 숨기는 기본판과 달리, 내가 가진 패가 몇 개인지를 알 수 있는 개방형 개인 게임판이 들어있다. 이 때문에 게임의 방식도 조금 다르다. 내 패를 한 번에 내려 일순간에 게임을 끝내 큰 점수를 획득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기본판과 달리, 루미큐브 인피니티는 상대방의 타일 숫자를 확인하며 게임을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루미큐브 셀렉트]에는 길고 단단한 수납함이 들어 있으며, 타일의 경우 다른 시리즈에 비해 고가의 재질을 자랑한다. 다른 시리즈들은 숫자 부분이 원형으로 음각됐으나, 루미큐브 셀렉트는 숫자 아랫부분이 원형으로 음각됐다. 클래식과 동일하게 폐쇄형 개인 게임판이 들어 있다. 루미큐브 국제대회에서는 이 루미큐브 셀렉트를 사용하고 있다.
헤르짜노가 루미큐브를 고안할 때 마작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의견이 있다. 그 마작과 유사하게 제작된 게임이 [루미큐브 클럽]이다. 기존 루미큐브 타일을 두껍게 제작했고, 약간의 경사를 주어 타일이 잘 보이도록 했다. 클래식과 달리 게임판을 사용하지 않고, 타일을 그대로 세워 게임을 한다. 타일의 개수가 확인된다는 점에서 인피니티와 유사한 게임성을 가진다.
[루미큐브 보이저]는 루미큐브의 여행용 판으로, 루미큐브 인피니티를 기본으로 하되 크기를 작게 제작한 상품이다. 트래블판과 달리 게임판 자체를 수납함으로 활용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루미큐브 트래블]은 양철 케이스에 담겨 있으며, 휴대성으로만 본다면 루미큐브 보이저보다 낫다. 개인 게임판과 타일을 넣어 다닐 수 있는 주머니가 들어 있어 들고 다니기 편하다.
[루미큐브 XP]는 루미큐브를 6인용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판이다. 타일의 크기는 트래블과 같아 작지만, 각 색상별로 1세트씩 타일이 더 들어 있어, 더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지퍼가 달린 가방에 들어 있는 [루미큐브 퍼니백(Funny Bag)], 타일에 2배 더 크게 그려진 숫자가 인상적인 [루미큐브 더블 엑스엘 넘버스(XXL Numbers)], 어린이를 위한 [마이 퍼스트 루미큐브(My first Rummikub)] 등 다양한 형태의 루미큐브가 발매돼 있다.
루미큐브 대회
월드 루미큐브 챔피언쉽(World Rummikub Championship, 이하 WRC)은 세계적인 루미큐브 대회다. 1991년 이스라엘에서 처음 개최됐으며, 3년마다 독일, 영국, 프랑스, 스위스, 네덜란드, 스페인, 이탈리아 등 각국을 돌며 개최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2003년부터 WRC 한국대표 선발전을 개최해 2003년 대회에서는 김태환 씨가 4위, 2006년 대회에서는 이철승 씨가 2위, 2009년 대회에는 조윤정 씨가 2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WRC 우승자는 우승 트로피와 부상으로 세계일주 항공권 2매를 받는다. 루미큐브의 수입사 놀이속의세상은 매 3년마다 지역 예선과 클럽 예선을 통해 한국대표 선발전을 치르고, 우승자에게 WRC 한국 대표 자격권과 WRC 참가 경비 일체를 지원하고 있다.
월드 루미큐브 챔피언쉽 대회 상징.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WRC6 네덜란드, WRC5 스위스, WRC8 이탈리아, WRC7 스페인. <출처: rummikub.co.kr>
루미큐브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희망
2002년 보드게임 카페의 붐을 타고 루미큐브는 한국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보드게임 중 하나가 됐다. 루미큐브는 숫자와 색상만을 사용하기에, 여느 ‘러미 형식’의 게임들과 달리 트럼프 카드의 킹이나 퀸과 같은 그림이 없다. 이로써 도박으로 인식되는 플레잉 카드게임의 한계를 벗어났고, 1980년 루빅스큐브(Rubik’s Cube, 1980)나 다스 쉬필(Das Spiel, 1980), 포커스(Focus, 1980) 등을 물리치며 올해의 독일 게임상(1980 Spiel des Jahres Winner)을 수상해 그 게임성 또한 인정받았다.
루미큐브가 카드 게임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탈피하기 위해 개발된 산물이라는 점은 현재도 의의가 있다. PC게임, 보드게임을 막론하고 게임이라면 여전히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들이 있고, 이러한 인식 때문에 게임업계 전반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게임업계에 대한 어두운 전망만이 가득한 지금, 루미큐브처럼 이러한 인식을 탈피하기 위한 작품이 개발되고 있지는 않을까. 루미큐브에서 그런 희망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루미큐브 [Rummikub] - 카드게임의 굴레를 벗다 (보드게임의 세계)